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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동진씨 연혁 :: 시조 동정기 :: 세계화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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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2004-03-18 10:19:28, Hit : 824, Vote :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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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성(姓)씨 중 진(陳)씨
진(陳)씨
강릉 경주 광동 김해 나주 남해 덕창 밀양 복주 부여 삼척 신광 안동 양산 양주 여양 여주 여홍 연안 영양 온양 의령 임파 전주 죽산 진산 진주 청주 충주 평산 함양 해주 홍덕 홍성 흥주
총 35개의 본관과 123,087명이 있다.(1985년)
옛문헌에 120여개의 본관이 나온다.
삼척 진씨, 나주 진씨, 강릉 진씨는 이미 여양 진씨로 합본하였다.


광동 진씨(廣東 陳氏)


광동진씨는 중국의 큰 성으로 광동지방에서 대대로 현유와 현관을 배출한 명문이었다.
1597년 왜적이 정유재란을 일으켜 조선이 위태롭게 되자 명나라에서 다시 원군을 보내어 왜적을 격퇴했는데 이때 진린이 수병 5천을 거느리고 그 해 12월20일 강진고금도에 도착, 이순신과 더불어 전공을 세웠다. 이듬해 7월 16일 한산도로 진을 옮겨 전공을 세워 무명을 떨쳤고, 이듬해 귀국하여 광동백에 봉해졌으며, 1602년 세상을 뜨자 태자소보에 추증하고 시호를 충강이라 내렸다.
그의 손자 영소는 감국수위사를 지내다가 1644년(인조22) 명나라가 망하자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와서 원수들과 하늘을 같이 할 수 없다 하여 남경으로부터 배를 타고 동도 남해의 장승포에 표착했다가 조상이 공을 세웠던 강진고금도로 회항하였다.
그곳에서 살다가 다시 해남현 내해리로 이거하여 광동진씨의 뿌리를 내렸으므로 후손이 처음 동도해서 국운 회복의 공을 세운 진린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조상의 관향인 광동으로 하여 세계를 잇고 있다. 1684년 시조의 증손 석문의 집 뒷뜰에 시조의 단을 베풀어 향사하다가 1871년 사지를 조성, 별묘를 세워 매년 청명일에 향사하고 있다.
[ 대표적 인물 ]
.진구경(명 자:방수 호:오운 관직:좌영도사)
1597년(선조30) 정유재란 때 아버지 진린을 따라 동국도독부도독전군좌영부사로 출진, 아버지의 휘하에서 많은 전공을 세우고 이듬해 귀국했다.
그의 전공을 가상히 여긴 명나라 황제로부터 <제세충장지가>라고 칭송을 받았다. 그 후 애산에서 청병을 물리치려다 순절했다.
.진영삭(조선 자:육영 호:해사 관직:감국수위사)
명나라 국운이 날로 쇠잔하고 청이 세력을 떨치는 무렵인 1637년(인조15)에 감국수위사에 임명되었다. 1644년 명나라 수도가 함락되고, 의종황제가 자결하자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망국의 한을 품고 원수와 같이 하늘을 같이 할 수 없다 하고 뜻을 같이한 하연리 등과 함께 남경으로부터 배를 타고 동도, 남해현장승포에 표착했다가 조상이 공을 세웠던 강진고금도를 거쳐 해남현내해리에 정착했다.
.진석문(조선 자:내언 호:매죽당 증공조참의)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혈혈단신으로 산이방(현산이면간두리)에 살면서 자립의 힘을 얻어 34세 때 조우산 아래 집을 짓고 솔과 잣을 심어 마을을 이루었다.
이로 인해 명나라 유민이 산다는 뜻에서 그 마을을 황조동이라 했다.
.진천익(조선 자:인수 호:서암 증승의랑)
.진천용(조선 자:경수 호:송포 증한성좌윤)
일찍이 부모와 형을 여의고 홀로 된 형수 밑에서 자라면서 어머니처럼 받들었다.
이긍익 문하에서 수학하여 문필로 이름을 떨쳤고, 호은 김현국 등과 도의로 사귀었다. 한성좌윤에 추증되었다.
.진기헌(조선 자:국보 호:해정 관직:첨정)
어려서부터 효우가 극진하였고 학문을 열심히 닦아 거유로 존경을 받았다.
선영을 정성들여 받들고 후생을 선도했다. 선조의 위업이 침몰할까 염려하여 백방으로 주선한 나머지 조고 2대가 추영을 받도록 했다. 벼슬은 봉상시첨정에 이르렀다.
.진계조(조선 자:성순 호:남계 효자)
천성이 온화하고 유순했다. 늙은 어머니를 섬기면서 농사짓고 누에 쳐서 맛있는 음식으로 봉양했으며, 뜻을 어기는 일이 없었다.
그의 효성이 널리 퍼져 당시의 군수 양주갑이 포상했다.
.진일(조선 자:자평 호:해산 학자)
오남 김한섭 문하에서 수업하여 문학으로 사우의 추앙을 받았다.
1820년 경 종문에 큰 재앙이 있었는데 이를 처리하면서 조금도 동요됨이 없이 침착하게 이를 바로잡아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충무공 이순신의 사손 문영과 도의로 사귀었다.


항렬
13세(泰)/ 14세(植)/ 15세(炅)/ 16세(基)/ 17세(鎔)/ 18세(洙)/ 19세(楨)/ 20세(煥)



여양 진씨(驪陽 陳氏)


진씨는 원래 중국의 성씨이다 송나라 때 복주 출신인 진수가 우윤 벼슬을 지내다가 국난이 일어나자 우리나라에 건너와 여양현(현 충남 홍성군 장곡면) 덕양산 아래 정착하여 살았다
그의 후손인 진총후가 고려 예종 때 이자겸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여양군에 봉해져서 그의 후손들이 진총후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여양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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